얄루의 최신 연작에 제 이름을 내어준 주인공 신인호가 내 꿈에 찾아온 것은, 2025년 6월 함부르크의 한 전시에서 그의 홀로그램 분신을 처음 만나고 몇 달이 지난 뒤였다. 사납고도 다정한 해적왕이자 K팝 아이돌, 작가의 외할머니의 디지털 쌍둥이인 신인호는 내 손을 잡고 나를 바다로 이끌었다. 작품이 꿈에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이 내 무의식으로 하여금 신인호를 불러내게 했는지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그 꿈은 나를 얄루의 작업과 데이터 자본주의에 대한 사유로 이끌었다.
축적된 기억들의 멀티버스 안에서 얄루의 비디오 설치는 정해진 시작도 끝도 없이, 큰 루프 속에 작은 루프들이 겹겹이 포개진 비선형 서사로 펼쳐진다. 이 끊임없는 흐름 덕에 그녀의 디지털 생태계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것처럼, 동시에 지금 막 송출되고 있는 것처럼[(a)live] 느껴진다. 그녀의 멀티버스는 물속의 세계이고, 빛을 내며, 광대한 참조의 바다를 양분으로 삼는다.
"인터넷에서는 누구도 당신이 개라는 걸 알지 못한다" 라는 전설적인 인터넷 밈(피터 스타이너, 뉴요커, 1993)부터, 역노화의 기적을 약속하며 전 세계에서 각광받는 한국 스킨케어 제품, 백제금동대향로(6세기경) 같은 고대의 유물, 『해적 계몽주의, 혹은 진짜 리베르탈리아』(데이비드 그레이버, 2023) 같은 문헌까지. 이 참조들은 그녀의 예술 안에서 노랫말과 건축적 형태로 짜여 들어가거나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 된다. 광고 산업의 언어와 매체와 재료를 전유하면서 얄루의 작업은 우리를 유혹한다. 화려하고 반짝이며 부드럽게 움직이는 이미지가 우리를 끌어들이지만, 일단 잠기고 나면 하나의 세계가 통째로 풀려나오고 더 섬세한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애니메이션 자막으로 위장하고, 오디오비주얼 설치의 노랫말이 되고, 겹겹의 공간 구성 속 건축 요소에 새겨진 채, 그 아래를 흐르는 서사들은 우리 자신의 편향과 판매의 기제, 기억의 연약함을 돌아보게 한다.
비디오 스틸, 《Thoughttail》, 2009. 작가 제공.
얄루의 작업은 우리를 프로젝트마다 계속 확장되는 평행우주로 데려간다. 얄루가 레지던시와 전시를 위해 세계를 이동할 때 작업도 그녀와 함께 이동하며, 한국의 신화에 뿌리를 둔 채 각 지역의 맥락에 적응해왔다. 미국 중서부의 농업을 외계의 개입으로 그려낸 《얄루팜》(2015)부터, 리버풀의 청소년들과 함께 안무한 K팝 요정들의 《버스데이 가든》(2022), 일본 후쿠오카의 지나치게 완벽한 슈퍼마켓 과일에서 출발해 소비문화를 비트는 거대 과일들의 《얄루파크, 예스! 세범》(2017)까지.
얄루의 초기 작업은 디지털 콜라주였다. 포토샵에서 도형을 오려내고 사진 속으로 줌인해 들어가며 만든 것들로, 이 후의 실천에 강한 영향을 남겼다. 유기적인 것과 합성된 것, 디지털과 아날로그 재료를 연결하며 그녀의 비디오 콜라주는 고대적 요소와 미래적 요소를 뒤섞는다.
AI로 생성한 이미지 파편이 조상의 사당과 가족의 집을 스캔한 3D 데이터와 합쳐지고, 그 위를 VR로 빚은 심해 생물들이 장식한다. 하나의 참조 체계 안에서라면 통상 공존할 수 없는 요소들, 예를들어 타이트한 점프수트를 입고 K팝 포즈를 취하는 노년의 여성, 여드름으로 뒤덮인 마스크팩을 이어붙이는 얄루의 작업에는 콜라주에 내재한 초현실주의의 감각이 있어, 관객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공공 공간에 놓인 얄루의 비디오 설치는 행인들과 예기치 못한 마주침을 일으킨다. 대형 미디어 파사드와 공항 디스플레이와 상점 쇼윈도의 광고로 위장한 채, 현실을 의심하게 만들고, 불완전함과 나이 듦과 못난 채소와 흠 있는 피부를 옹호하며 우리 시각의 팔레트를 넓힌다.
좌_《신인호 월드 투어》 홀로그램 애니메이션 스틸, 2024. 작가 제공. 우_《예스! 세범 마스크》 스틸, 2018. 작가 제공.
얄루에게 콜라주는 세계를 해체해 다시 조립함으로써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난다. 예컨대 《피클드 시티》(2022)에서 인간의 시점은 비인간의 시점과 융합되어, 관객을 미래적이고 트랜스휴먼적인 수중 도시 깊숙이 끌어들인다. 기술의 진보는 인간의 시야를 크게 확장해 심해와 우주, 그리고 이전 세대들은 오직 신화와 꿈을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던 공간들에 닿게 했다. 이 지각의 전환에 매혹된 얄루는 다양한 기술 도구를 가지고 놀며 인간 확장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신인호》 3부작(2024~)의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얄루는 자신의 외할머니 신인호를 3D 스캔하였다. 그녀를 디지털 아카이빙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그 애니메이션된 몸을 부풀어 오르는 풍선으로 변형해, 신인호의 가상 아파트(이 역시 외할머니의 실제 아파트를 3D 스캔한 것이다)의 벽을 밀어 늘렸다.
우리가 공간을 어떻게 점유하고 조직하는지,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사유다. 작업 과정에서 얄루는 스케일을 과감하게 다룬다. 사물을 부조리할 만큼 다시 재고, 사물 안에 사물을 캡슐처럼 넣고, 가보로 물려받은 금목걸이를 탯줄로, 인간을 미역으로 변형한다. 삼대를 거친 여성들이 점차 수중 존재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인간의 진화와 모계의 세대 간 지식 전수를 들여다본 《호모 폴리넬라 더 랩》(2020)의 중심 서사가 바로 그 것이다.
《호모 폴리넬라: 광합성하는 포스트휴먼 시나리오》 설치 전경, 2020, 플랫폼엘, 서울. 작가 제공.
《신인호》 3부작을 잇게 될 다가오는 커미션에서 작가는 AI 도구와 리얼타임 렌더링, 모션캡처를 한층 더 밀고 나간다. 처음으로 배우와 협업해 모캡으로 신인호의 가상 신체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인간의 시각과, 인간과 컴퓨터의 시각 사이를 오가는 관점"을 다룬다(작가와의 대화, 2025년 9월 17일). 이 데이터의 이전은 인간의 움직임과 표정을 컴퓨터가 생성한 것과 섞어 인간과 기계의 시각이 합쳐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그녀의 실천을 확장하는 동시에, 기술을 통해 타인의 몸과 시각과 기억에 어떻게 거주할 수 있는가를 심문한다.
《신인호: 세이렌 서버의 공습》(2026)은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어, 관객이 해적왕의 국적을 초월하고 세대를 가로지르는 선원들의 지원 속에 데이터센터를 습격하는 그녀의 눈으로 세계를 보게 할 것이다. 이 전환은 관객을 이 평행 세계에 온전히 잠기게 하며,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 사이 경계의 흐려짐을 보여준다.
홀로그램 애니메이션 《신인호 월드 투어》 스틸, 2024. 작가 제공.
콜라주 기법을 디지털로 확장하며 얄루의 작업 흐름은 블렌더, 언리얼 엔진, ComfyUI 같은 도구들 사이를 유연하게 오간다. 푸티지(fotage)를 먹이고 다시 먹이고, 에셋을 빚거나 생성하고, 사물과 텍스처와 몸과 풍경 전체를 디지털화하면서 포스트 인터넷 콜라주 작가로서 얄루의 실천은 실험과 재구성에 뿌리를 둔다. 그녀는 최신 기술을 대단히 직관적으로 다루며, 종종 독학으로 그것을 사용하는 법과 '오용'하는 법을 익힌다. 이 시행착오의 접근—그녀의 언어로 "전부 다 틀리게 쓰기"는 하나의 기능을 위해 설계된 기술의 제약을 심문하게 하고, 그 쓰임의 폭을 넓혀 자신만의 예술적 악기로 빚어내게 한다.
"기술을 더 잘 쓰는 게 예술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뛰어들 수 있는 선례가 되고 싶고요." (작가와의 대화, 9월 17일) 이 DIY적 태도는 신기술을 다루는 동료 작가들 —다니엘 브레스웨이트-셜리, 소우겐 청, 홀리 헌던과 맷 드라이허스트 —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실천 역시 긴 리서치와 개발의 시간에 뿌리를 두고, 미드저니 같은 텍스트·사운드 생성 프로그램이나 StyleGAN 같은 구형 모델을 다루며, 맞춤형 AI 모델을 훈련한다. 기술을 '오용'함으로써 이들은 기존의 도구를 혁신하고, 다른 창작자들에게 이롭고 더 넓은 기술 생태계에 기여하는 확장을 밀어 올린다.
이 작가들은 각자 고유한 목소리로 이 진화하는 기술 지형에 개입하며, 상업적 이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대 테크 기업들이 방치해온 틈을 짚고 잇는다. 홀리 헌던과 맷 드라이허스트 듀오는 창작자가 자기 작업이 AI에 긁혀 전유되는 것을 막을 길을 닦았고,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수익화할 수 있는 오픈소스 모델 홀리플러스(Holly+)를 개발했다. 소우겐 청은 로봇과의 협업으로 자신의 몸을 확장하고, 맞춤 AI 모델을 훈련해 공유된 물리적 언어를 만들어가며 로보틱스의 통념에 도전한다. 작가이자 게임 프로듀서인 다니엘 브레스웨이트-셜리는 단종된 게임 엔진 UPBGE 같은 '한물간' 기술을 의도적으로 사용해 그것을 보존하고, 기성 에셋이 초래하는 균질화에 맞선다. 얄루의 접근도 마찬가지로 실험적이어서, 세기와 문화와 맥락을 가로질러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파운드 푸티지를 콜라주한다.
이 유희적인 기술의 '타가수분(cross-pollination)'은 창작의 새 길을 여는 동시에 기술의 한계와 비일관성도 드러낸다. 경쟁하는 테크 자이언트들의 전용 도구는 서로 호환되지 않기 일쑤니까. 사실상 얄루는 이 기술들을 해킹한다. 자르고 붙이고, 꿰매고 겹치며, 어울릴 수 없어 보이는 요소들을 잇는 것이다. 시카고 예술대학 시절(2007–2015)부터 유지해온 태도다.
"콜라주를 정말 많이 했고, 비디오 작업도 상당 부분 거기서 나왔어요. 애프터 이펙트가 나왔을 때는 도형을 오리고, 합치고, 크기를 바꾸고 있었죠. 3D로 작업할 때도 여전히 콜라주의 마음으로 접근해요. AI가 매혹적인 것도 그래서예요. 결국 파운드 푸티지를 다루는 일이니까." (작가와의 대화, 2025년 9월 17일)
텍스처와 파운드 푸티지를 실험하며 예기치 못한 결과를 얻는 것, 그것이 그녀의 실천의 핵심에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처음 선보인 《신인호 프롬 미추홀》(2025) 같은 설치는 이 콜라주적 접근을 텍스처와 비디오 푸티지, 물질의 겹침으로 전시 공간까지 확장한다. 전경의 투명 LED 스크린 위로 신인호의 AI가 스민 태평양 횡단 여정과 안무화된 데이터센터 습격이 펼쳐지고, 배경에서는 회전하는 폭발의 홀로그램들이 명멸한다. 쇼윈도는 데이터 해적질이라는 절박한 동시대의 질문을 회전시키는 복합적인 연극이 된다.
《신인호 프롬 미추홀》 설치 전경, 2025,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작가 제공.
설치가 점점 복잡해지면서 신기술을 다루는 작가들은 영화나 게임 프로덕션과 다르지 않은 창작 팀을 꾸리게 된다. 얄루도 예외가 아니다. 그녀의 실천은 고도로 협업적이며, 프로젝트를 가로지르는 공유된 언어를 기르기 위해 협업의 연속성을 소중히 여긴다. 핵심 팀은 그래픽 디자이너 핸디 김, 프로덕트 디자이너 루우영, 작곡가 예츠비, 작가 정지돈으로 이루어져 있다. 디렉터의 자리에 선 얄루는 협업자들에게 브리프나 스토리보드 대신 시적인 프롬프트를 건넨다. 그편이 더 자극적이고, 최대한의 창작적 자유를 허락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협업 방식을 "각자가 풍부한 데이터셋을 내놓는 상호 훈련"이라 부른다(작가와의 대화, 9월 17일).
총괄 프롬프트는 작품과 나란히 가는 하나의 설화가 된다. 설화는 지식 보존의 형식이고, 사실과 허구를 섞어 메시지를 암호화하곤 한다. 얄루는 이 전통을 따라, 과거와 현재 속에서 미래에 영향을 미칠 패턴들을 발굴한다. 그녀의 작업은 해독을 기다리는 설화를 들려준다. 구전 이야기처럼 유동적이고, 계속 변형된다. 여러 부로 이루어진 프로젝트들은 여러 전시에 걸쳐 전개되고, 그녀는 장소 특정적인 새 회차와 속편을 만들어간다. 그 많은 예 가운데 하나가 샌프란시스코 836m에서 열린 《신인호 도킹》(2024)으로, 공간과 개념 양쪽에서 장소에 응답하며 그곳을 태평양을 건너는 데이터 약탈 항해 중인 K팝 선장 신인호의 해적선이 잠시 정박하는 도킹 스테이션으로 바꾸어 놓았다. 비디오 게임이나 영화처럼 이 설화들은 관객을 다른 시간과 장소로 실어 나르면서도,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접속 가능해지고 연결되는 시간의 전환이 강하게 규정하는 우리의 현재와 밀착해 있다.
《신인호 도킹》 설치 전경, 2024, 836m, 샌프란시스코. 작가 제공.
콜라주는 한국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표현 방식으로,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명맥을 이어왔으며 특히 백남준은 이를 활용해 비디오 콜라주를 제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한국 작가들의 흐름을 개척했으며, 얄루에게도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는 백남준은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
"콜라주 기법이 유화를 대체했듯,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다. 언젠가 예술가들은 오늘날 붓과 바이올린과 폐품을 다루듯 축전기와 저항기와 반도체를 가지고 작업할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 하나에는 초당 4백만 개의 점이 있다. 얼마나 다양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 콜라주는 오랫동안 독자적인 매체로 대접받지 못한 채 사진이나 그래픽 디자인으로 분류되어 왔지만, 디지털 문화와 AI를 다루는 세대가 초연결된 현실에 본질적으로 잇닿은 표현 형식을 찾으면서 강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백남준은 자신의 작업을 "시간 콜라주"라 불렀다. 문화와 자연과 기술 사이의 내재적 연결을 드러내고, 시간의 선형적 관념을 해체하는 것. 마찬가지로 얄루는 군사와 감시와 상업을 위해 설계된 기술의 용도를 바꾸어, 새로운 시간의 새벽을 감지하게 하는 대안 세계들을 짓는다.
소셜미디어와 딥페이크, 부상하는 파시즘의 시대에 허구와 진실은 점점 흐려지고, 허구는 하룻밤 사이 현실이 된다. 얄루는 "실재하는 동시에 실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끌린다(작가와의 대화, 2025년 9월 17일). 이것은 우리를 다시 꿈과 기억으로 데려간다. 그녀의 작업은 인간이 데이터가 되는 일을 탐구한다. 부정의 관점이 아니라 뉘앙스를 가지고, 이 실천이 수세기 동안 존재해왔고 문화를 결정적으로 빚어왔음을 보여주면서.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지각하는가와 어떻게 지각되기를 바라는가 사이의 이중성을, 개인의 차원에서든 국가 만들기의 차원에서든 비춘다. 백남준처럼 그녀의 실천도 해외에 사는 한국인이라는 조건으로 규정된다.
그녀는 말한다. "한국인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수출해야 해요."(작가와의 대화, 2025년 9월 17일)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음악과 AI와 뷰티 산업에 기대어 K컬처와 K뷰티와 K테크를 전 세계에 판다. 얄루는 이 미학들을 흉내 내며, "신기술을 다루는 젊은 한국 작가"라는 딱지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인호의 K팝 안무나 작업 전반에 되풀이되는 커다란 마스크팩 컷아웃의 표면 아래에는 더 깊은 메시지가 맥동한다. 소프트 파워로서 문화의 수익화와 수출, 신체의 정치, 대중매체 속 여성의 재현, 그리고 데이터의 권력에 대한 질문들이다.
《신인호: 세이렌 서버의 공습》 스틸, 2025. 작가 제공.
얄루의 역동적인 비디오 콜라주는 3차원 공간으로 뻗어 나간다. 바닥 프로젝션에서 홀로그램과 증강현실, 건물 파사드와 조각적 컷아웃 위의 프로젝션 매핑까지. 작가는 자신의 설치를 디지털 기억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여기고, 관객을 그 안으로 초대한다. "작업이 공간 안에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사람들이 그 주위를 걷거나 그 위를 밟을 수 있는 게 좋아요. VR 헤드셋을 쓰는 것보다 훨씬 몰입적인, 다른 종류의 관조죠."(작가와의 대화, 2025년 9월 17일) 얄루는 전시 공간을 가상 공간을 다루듯 애니메이션할 수 있는 무엇으로 생각하곤 한다. "모든 것이 무빙 이미지라고 생각하는 걸 좋아해요."(작가와의 대화, 2025년 9월 17일)
코로나 시기 그녀는 잠시 비어 있던 서울의 나이트클럽을 디스토피아적 테크노-어반 에덴동산으로 바꾸고, 클럽의 멀티미디어 시스템을 위한 사운드와 비디오와 조명의 작곡을 만들었다. 《꽃감관의 뜰》(2023)에는 향(香)의 요소와, 운석 충돌에 소리로 응답하는 클래식 전공 음악가의 20분짜리 심포니가 포함되었다. 관객은 복싱 링 같은 무대에 올라 우주론적 정원사가 되어 이 대안 생태계로 피신하는 동시에, 팬데믹이 초래한 긴장된 신체 감각을 한층 첨예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얄루의 설치는 미니어처 세계로 펼쳐지는 공간적 서사이며, 모든 모퉁이가 생생한 무빙 이미지와 사로잡는 음악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어릴 적 꿈 중 하나가 테마파크를 만드는 거였어요. 그래서 늘, 내가 전부를 통제할 수 있는 경험의 장소, 비디오를 조각적 요소 삼아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 환경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작가와의 대화, 2025년 9월 25일)
《꽃감관의 뜰》 설치 전경, 2023,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 작가 제공.
또 다른 장소 특정 비디오 설치 《피클드 체임버》(2023)는 서울 IBK기업은행의 13미터 높이 로비를, '까수기' 혹은 '설위설경'이라 불리는 한국 무속의 신성한 종이 오리기 기법에서 영감을 얻은 레이저 컷 종이 장식을 두른 비계 구조의 기념비적 관문으로 바꾸어 놓았다. 기술적 미래주의를 연상시키는 구조물 내부에는 네 개의 대형 토템 스크린이 설치되어, 지나가는 이들을 수중의 테크놀로지적 생태계로 이끌었다. 이 공간은 동시에 세계적인 자금의 흐름이나 뇌의 시냅스가 발화하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얄루의 세계는 열린 결말의 모호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관객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예상치 못한 연결을 이끌어냄으로써 우리가 학습해온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관계와 연결성을 감지하도록 한다.
《피클드 체임버》 설치 전경, 2023, IBK기업은행, 서울. 작가 제공.
우리는 서구적 시간 지각이 흔들리는 시대를 산다. 기억이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의 형태로 널리 접근 가능해지면서 우리는 과거와 더 깊이 연결되었고, 인공 시스템과 데이터 축적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더 능해졌다. 양자 컴퓨팅은 이 전환을 급격히 가속해 시간과 사회적 환경에 대한 우리의 지각을 영영 바꿔놓을 것이다.
김아영의 《딜리버리 댄서》 연작(2022–2024), 리비 히니의 《Ent-》(2020), 얄루의 《신인호》 3부작(2024–2026) 같은 시간 기반 예술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0) 같은 영화는 이 시간 지각의 전환을 감지하게 한다. 그러나 얄루는 비선형적인 시간성에 대한 이해, 즉 보다 순환적이고 자연의 질서에 가까운 시간관이 수세기 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자본주의가 상정하는 진보적 시간관에 저항하는 많은 공동체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얄루는 과거 세대가 축적해온 지식 체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 지식의 상당 부분이 고대의 사물과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몸속에 저장되어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겪는 것들 중엔 아직 설명할 줄 모르는 게 많아요. 과학이 새로운 현실을 다 따라잡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몸은 이미 알아요. 말로 못 풀 뿐이죠. 고대 유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래서예요. 그때 사람들은 알아냈는데, 우리가 그 지식에 접근하는 법을 잃어버린 거예요." (작가와의 대화, 2025년 9월 25일)
《기쁠 희》 스틸, 2023. 작가 제공.
얄루는 기억의 그릇으로 기능하는 기억술적 도시 풍경과 문화적 인공물, 반(半)허구적 인물들을 지어 우리에게 해독을 청하고, 우리를 다른 유기체와 사물에 연결하는 것이 데이터라는 사실로 주의를 돌린다. 특히 최근의 《신인호》 3부작에서 얄루는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데이터 뱅크임을 강조한다. 개인적 기억과 허구적 기억을 뒤섞은 레오노라 캐링턴의 초현실주의적 사고 실험 『다운 빌로우』(1944)에서 영감을 얻어, 얄루는 외할머니의 몸을 스캔해 데이터로 바꾸며 나이 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나이 든 한국 여성의 이 데이터 껍질을 출발점 삼아, 얄루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해적 중 하나인 해적 여왕 정일수(칭 시)를 위한 기억의 그릇을 빚고, 그 위에 K팝과 디스토피아적 테크노 퓨처리즘의 층을 입혔다. 시간을 얼리는 도구로 3D 스캔을 쓰며 얄루는 공간과 사물 속으로, 그리고 신인호처럼 사람 속으로 줌인해 들어간다. 몸은 우리를 현실에 정박시키지만, 세계관은 우리의 경험과 더불어 더 근본적으로는 조상들의 경험을 빚는다. 우리를 연결하는 것은 데이터, 즉 유전된 기억이다. 해독하는 것과 해독되는 것은 언제나 인간 조건의 중심이었으나, 인공 행위자들이 무대에 들어서며 새로운 복잡성의 층이 더해졌다.
신인호의 스캔된 피부 이미지, 2024. 작가제공
얄루 작품의 초현실적 성격은 설명하기 어려운 것, 즉 정신으로는 언어화하기 힘들지만 몸으로는 감지할 수 있는 것을 표현한다. 1989년 백남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부는 현실과 접속하기에 부적합해졌다. 기술이 몸의 새로운 존재의 막(膜)이 되었다."(에바 레스피니, 『Art in the Age of the Internet, 1989 to Today』, 전시 도록, 보스턴: ICA; 뉴헤이븐·런던: 예일대학교 출판부, 2018, 78쪽에서 재인용) AI는 몸의 메시지를 해독하고 지식과 기억의 외부 아카이브를 만드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기술은 우리의 몸을 확장하며 현실의 지각을 깊이 빚는다. 몸에 무엇을 먹일지 살피듯, 우리가 소비하는 데이터에도 그만큼 유의해야 한다. 그것 역시 우리의 세계관을 빚으니까.
얄루는 이러한 사변적 세계 구축(speculative world-building)을 통해 동시대의 존재와 우리가 기억과 맺는 관계를 탐구하며, 다음과 같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게 될 것인가?
우리는 새로운 기술에 의해 크게 추동되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연결을 감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얄루의 작업에는 우리를 둘러싼 데이터와 우리 내부에 존재하며 조상으로부터 전승된 데이터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해독하도록 이끄는 기억술적(mnemonic) 특성이 있다.
최근 작업들이 모두 수중을 배경으로 하는 이유를 묻자, 얄루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작은 반도에서 자랐고, 제 사주에 물이 필요하대요. 균형을 맞추려는 내적 충동이 나를 물로 끌어당기는 건지도 모르죠."(작가와의 대화, 9월 25일) 그러나 거기에는 한국의 항구도시 인천에서 보낸 성장기나, 두 세계에 동시에 거주하는 일을 몸으로 알게 한 태평양을 사이에 둔 로스앤젤레스와 한국의 삶,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지도 모른다. 얄루로 하여금 우리의 시간 감각을 구부리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유동성이다. 우주와 바다를 영원히 반복되는 순환으로 잇고, 우리를 신인호와 함께 과거와 미래의 기억의 바다를 헤엄치게 하며, 얽힌 시간의 새벽을 감지하게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