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적 연금술 – Fata Morgana
구나연(미술비평)
Fata Morgana는 대기 중 발생하는 신비한 신기루를 일컫는 이탈리아어로, '요정 모르가나'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아서 왕의 전설”에서 아서 왕의 이복누이인 모르간 르 페이(Morgan le Fay, The Fairy Morgan)에서 기원한다. 그녀는 마녀였고, 마법에 능통한 인물로 묘사되며, 선과 악을 오가는 복잡한 인물이기도 하다. 미술사가 제임스 엘킨스(James Elkins)는 그의 저서 『회화란 무엇인가(What Painting is)』에서 회화를 하나의 물질적 '연금술'(Alchemy)로 설명한다. 물감이라는 색을 지닌 물질은 회화로 이행되면서 완전히 다른 형상으로 변모하는데, 물감과 이미지의 관계는 과거 연금술의 열망과 같이 물질이 거장의 명화라는 황금이 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화가들은 물감이라는 질료의 한복판에 서서, 이 물질의 수렁을 이미지로 어떻게 변형시킬 것인가를 결정한다. 구상적 회화의 천천히 계획된 변주, 혹은 표현주의적 추상의 충동적인 질주의 흐름에 상관없이, 회화라는 물질의 연금술이라는 측면은 변화하지 않는다. 어쩌면 화가는 연금술사이고, 이 같은 마법의 신기루를 구사하는 마녀 파타 모르가나일지 모른다.
정수정의 개인전 Fata Morgana는 마녀의 마법과 그 회화적 연금술을 모두 포함한다. 그의 회화에서 여성은 비밀스러운 그들만의 의식과 환상 안에서 서로 연대한다. 예컨대 Blue Beam에는 붉은 숲과 나무를 둘러싸고 휘도는 여인들이 있다. 이들의 몸은 푸른 빛을 띤 채 물 속을 헤엄치듯 움직인다. 그곳이 수중인지, 아니면 깊은 밤의 신비한 숲속에서 일어난 신비한 의식인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이들은 현실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어느 공간에서 자유로운 몸짓으로 유영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앙상한 동물의 뼈가 놓인 죽음과 유한한 시간의 메타포마저, 붉고 푸른 유영의 운율 안에서 진행되는 하나의 축제처럼 융화된다. 숲은 정령과 요정의 설화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 영토에서 여성성은 요정 혹은 마녀, 신기루이자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현자의 돌'과 같다. 이 여성들은 관습이 작용하는 현실태의 문법으로부터 벗어나, 그 모든 관습의 작용으로부터 벗어난 회화적 환경과 그곳에 놓인 능동적 존재로 화면 안에 자리한다.
정수정은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대한 억압, 특히 여성, 딸, 배우자 등의 사회적 위치에 나를 가두고 살고 있다고 느낄 때, 이것이 답답해질 때, 그림에서는 이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욕망이 반영된다"고 말한다. 특히 어릴 적부터 보았던 회화의 도상들이 강력하게 체화된 그에게, 인체에 대한 관심은 인물의 동세로부터 그 다음의 장면이 우리 안에 떠오르며 이어지는 역동적 상호작용을 지향한다. 여성들의 무수한 포즈와 움트는듯 생생한 숲의 화합은 그의 회화를 멈춘 이미지의 표면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화려한 군무의 화면으로 변화시킨다. 이러한 동적 상태는 그의 회화를 무수한 관습들의 작용으로부터 벗어나, 결코 고정될 수 없는 유기적 장치로 만든다. 우리의 관념 속에서 기피되어온 자연의 속성이 정수정의 회화 안에 드리울 때, 우리는 낯선 기괴함과 더불어 신비한 파괴적 속성을 마주하게 된다.
Island of Fata의 경우, 자연이 지닌 동물과 잔해, 생멸의 내피와 표피가 쌓인 외딴 섬 위로 붉은 육체가 떠오르거나 낙하하고 있다. 붉은 인물의 육체는 마치 변신을 앞둔 것처럼, 동물성과 야생성이 그 몸을 잠식해 들어간다. 도상은 강렬한 보색의 대비로 가득 차, 역동적인 변신의 파토스와 이후를 암시하는 사건을 고조시킨다. 정수정은 인체라는 구조조차, 인체에 작용하는 규범과 관습의 하나가 될 수 있기에 인체라는 틀을 이미지로 해체하고 갱신함으로써 회화로 가능한 새로운 육체를 구현한다. Island of Fata에서는 인물의 얼굴이 몸통에 가려져 있으나, 그 얼굴은 Lava나 Molten Shell에서 불현듯 출현한다. 잠든 듯 보이는 여성의 얼굴들은 미끈한 알 속에서 막 부화하여 예측할 수 없는 생명으로 진화하는 마법의 단계를 드러낸다. 그것은 깨어나기 직전의 긴장감을 품은 채, 어미 새로부터 물려받은 깃털처럼 부드럽고, 성게처럼 따가우며, 송곳처럼 예리하되, 은행잎처럼 수억년 지속될 얼굴의 탄생이다.
따라서 정수정의 자연은 투명한 알을 품은 파충류의 그것이면서, 모성을 지니고 서로를 포용하는 여성의 힘을 동시에 발현한다. 이것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밀실 안에서, 억압으로 작용하는 고정된 모든 것을 해방의 판타지로 뒤바꾸는 회화적 신기루가 된다. Melted Night과 Fanfare처럼, 반인반수의 우화이자, 주술 같은 팡파레가 밤을 밝히는 그의 회화 안에서, 자연은 현실의 배경이나 풍경이 아니라 화가에 의해 설계되고 변모된 신화적인 ‘자연성’으로 꿈틀거린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안에 가려진 수많은 내장과 박동이 눈앞에서 펼쳐질 때 느끼게 될 기괴와 경이를 동시에 품고 있다. 과거 초현실주의자들이 열광했던 환상의 장면과 고전주의의 도상학이 결합된 혼성의 전략이 관습적 억압의 파기와 결합될 때, 정수정의 작업이 지닌 그로테스크한 회화적 연금술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에 대한 극복과 파기는 자연성의 측면이나 여성 신체와 그 동세의 변형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지만, Molten Shell의 화면 우측 하단에 보이는 운동화의 이미지와 같이, 이는 일상의 작은 자유, 도시 속의 작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미시적 순간에서 시작되는 회화적 증폭은 놀랄만큼 거대한 소용돌이로 진화하게 되는데, 그것이 Swooping과 Surging이다. 두 작품은 모두 가로세로가 2미터가 넘는 대작으로, 각각 ‘급하강’과 ‘급상승’을 의미하는 제목을 갖는다. 그런데 급하강하는 것은 새의 무리이고, 급상승하는 것은 쥐의 무리이다. 이 딜레마는 우선 정수정이 회화를 통해 접근하려는 석회화된 관념에 대한 위반과 관련된다. Swooping에는 유동하는 패턴의 격랑 속에서 급하강하는 새들의 다양한 모습이 보인다. 그 새들은 마치 땅을 새로운 하늘로 삼으려는 것처럼, 내리꽂듯 맹렬히 화면 아래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새들을 붙잡아 다시 위로 당기려는 여러 손짓이 새들의 격한 이동을 더욱 치열한 카오스로 만든다. 중앙에 자리잡은 여성 신체의 실루엣은 회화의 자율 안에서 매섭게 해체되어 추상의 형체로 이화된다. 그것은 들끓는 패턴과 디테일의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급격히 변화하는 새들의 하강과 얽히어 공간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 혼란의 사이 사이로 새들은 달아나듯 휴식하고, 죽은 듯 생동한다.
한편 화면을 휘돌며 질주하는 붓질의 궤적은 Surging에서 하얀 쥐들이 날듯이 급상승할 수 있는 길을 터 준다. 섬세한 (깃)털 같은 패턴은 강렬한 속도감으로 투명한 역학을 형성한다. 날아가는 모자처럼, 거대한 화면에서 바람이라도 불어올 것 같은 격동은 프레임 없이 유연한 캔버스천 그대로의 물성이 벽과 단단히 밀착하며 견고한 화면의 장악력을 펼쳐낸다. 불가해한 직관적 붓질과 물감의 흐름이 쥐들의 상승을 추동하는 비정형의 항로를 마련하는 가운데, 무수한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의지의 발현은 급강하와 급상승이라는 딜레마의 향연으로 현현한다. 이러한 역설은 정수정이 회화를 통해 획득하려는 해방의 연금술과 관련된다. 세계에 대한 의문에 상상을 통해 자답할 수 있는 미적 에너지를 발현하면서, 절박해 보이는 동물들과 형상들은 기실 긴밀하고 은밀하게 서로를 감싸 받아들이며 조응한다. 그의 화면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서로 반목하는 일이 없다. 그의 회화는 어떤 대결도 없이, 그저 자신을 발휘할 때 나타나는 초월적인 변모의 장소가 된다.
정수정의 작업은 관습에 대한 거부와 억압의 기저를 회화적 승화로 전환하고, 심화된 변형(Metamorphosis)의 모티브로 접근한다. 이번 전시에서 여성의 신체는 추상성과 자연성을 동시에 담보하는 형상의 기원으로 자리하면서, 이질적인 것 사이의 혼재와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회화에서 변형은 여성의 신체가 무수히 이화하며 규정할 수 없는 추상의 상태가 되는 회화적 형식의 서사가 된다. 그것은 여성 신체의 변신과 해체, 자연과 우화와의 병치, 형태와 패턴이 표현주의적으로 결합되며 점차 회화적 전복에 접근하는 과정이다. 견고한 대상이 수평선 위에서 홀리듯 뒤집하고, 엇물리고, 일렁이는 파타 모르가나의 신기루가 그의 화면 위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이는 회화적 연금술을 통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율성의 시각화이다. 그가 억압과 극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배 담론에 대한 전복 같은 진부한 호소가 아니라, 자신의 감각이 지연되고 배제되는 조건에 대한 완강하고 진실한 거부이다. 이 거부의 몸짓은 지극히 회화적 몸짓으로서, 회화로 실현 가능한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에는 치밀한 미술사적 어휘와 본능적인 직관 사이의 긴장과 균형으로 빚어진 꿈이 존재한다. 정수정의 회화가 지닌 파괴적 에너지와 수수께끼적 형상들은 결국 회화의 물성으로 변모한 자유의 성취이다.